기계의 거울 앞에 선 인간
18세기, 생명을 시계장치처럼 설명하려 한 철학자들이 있었습니다. 19세기, 산업혁명은 인간의 노동을 기계로 대체했고, 20세기에는 한 수학자가 지적인 계산의 본질을 기계적으로 형식화하려 했습니다. 그는 앨런 튜링(Alan Turing)이었습니다. 튜링이 상상한 단순한 기계(이른바 ‘튜링 기계’)는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모든 컴퓨터, 알고리즘, 인공지능의 이론적 뿌리가 되었습니다.
튜링의 기계는 단지 계산을 수행하는 도구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인간 정신의 구조를 모사하고, 나아가 인간 지성의 본질을 질문하는 철학적 장치였습니다. 그리고 오늘, 인공지능은 우리에게 다시 묻습니다.
“생각하는 기계가 가능한가?”
“그렇다면 인간은 단지 복잡한 기계에 불과한가?”
이 책은 그 질문에서 출발합니다.
우리는 지금, 기계론의 르네상스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한때 고전물리학과 생리학 속에 머물던 기계론은, 디지털 기술과 인공지능의 발전과 함께 다시 떠오르고 있습니다. 인간의 뇌를 인공신경망으로 대체하려는 시도, 감정을 분석하고 예측하는 알고리즘, 유전자를 조작하여 생명을 재설계하는 합성생물학 등 이 질문들은 고대로부터 유래한 질문, 즉 “모든 것은 기계인가, 라는 질문의 현대적 표현입니다.
하지만 기계론은 단순한 과학 이론이 아닙니다. 그것은 인간관, 세계관, 그리고 윤리의 문제를 포함합니다. 이 책은 튜링 기계라는 수학적 아이디어를 출발점으로 삼아, 기계론의 철학적 기원에서부터 현대 과학의 논쟁, 그리고 미래 기술의 전망까지를 아우릅니다. 우리는 튜링 이후 계산 가능한 것과 불가능한 것의 경계를 살펴보며, 인공지능 시대의 인간의 위치를 다시 사유하게 될 것입니다.
기계가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다면, 자유의지는 어디에 있는가?
감정, 의식, 의미는 계산될 수 있는가?
그리고 무엇보다, 인간은 기계 이상일 수 있는가?
이 책은 이러한 질문들에 대한 답을 제시하기보다, 보다 정교하고 깊은 질문을 함께 고민할 수 있는 지적 여정을 제안하고자 합니다. 철학자, 과학자, 예술가, 그리고 기술자들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우리는 인간과 기계의 경계선을 다시 그려보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단순한 기술의 진보를 목격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인류가 스스로를 이해하고 정의하던 오래된 틀이 근본적으로 흔들리고 있는 지적 전환기에 서 있습니다. 20세기의 인지과학과 계산주의적 사고는 인간의 마음을 계산 가능한 시스템으로 환원하려 했고, 21세기의 인공지능은 이제 그러한 시스템이 실제로 창의성, 학습, 결정을 수행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자주 잊는다. 이 모든 사상의 밑바탕에는, ‘기계가 생각할 수 있다’는 하나의 급진적인 질문이 있었다는 것을.
튜링은 이 질문을 수학의 언어로 다뤘지만, 그 파장은 과학과 철학, 심지어 신학과 예술까지 진동시켰습니다. 이 책은 바로 그 지점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저자 이현은 과학, 기술, 철학, 역사에 깊은 관심을 가진 작가입니다. 그의 작품은 이러한 다양한 분야의 교차점에서 독특한 통찰을 제공하며, 복잡한 주제를 명확하고 접근하기 쉽게 풀어내는 능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저자는 과학적 탐구와 철학적 사유를 통해 인간 존재의 의미와 사회의 발전에 대한 질문을 던지며, 역사적 맥락 속에서 현재를 바라보는 시각을 제시합니다.
독자들에게 지적 자극과 새로운 시각을 선사하는 그의 글은,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아우르는 깊이 있는 사유를 불러일으킵니다.